1941년 9월, 독일군이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쌌습니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끊긴 포위는 872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겨울이 오자 하루 빵 배급은 125g까지 줄었고, 수십만 명의 시민이 굶주림과 추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바로 그 도시에서 교향곡 7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곡은 훗날 도시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 교향곡으로 불리게 됩니다.
단원 열다섯 명 남짓으로 시작한 리허설
1942년, 이 곡을 포위된 도시에서 직접 연주하자는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지휘를 맡은 카를 엘리아스베르크가 라디오 오케스트라에서 모을 수 있었던 단원은 겨우 열다섯 명 남짓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세상을 떠났거나 너무 쇠약해 악기를 들 수 없었습니다.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불러 모았습니다. 전선에 나가 있던 군인 가운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들까지 오케스트라에 합류했습니다.
1942년 8월 9일
공연은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대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연주는 확성기를 타고 도시 곳곳으로,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적의 참호까지 흘러갔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날 참호에서 이 소리를 들은 독일 병사들이 “그날 우리는 이 도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굶주린 도시가 꺼내 든 것은 무기가 아니라 교향곡이었습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 마스터즈 시리즈 8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포스터](https://pwaoabichvkjhzwdlbwz.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post-images/_w/540/ingest/venues/e91724fba9b69586f7284edc.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