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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정보]3.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는 대체 왜 필요할까?

클래식 (더블베이스)(j******)6시간 전
오케스트라 연주을 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겁니다.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고 있는데, 지휘자는 왜 필요한 걸까?” 바이올린도 자신의 악보를 보고 있고, 첼로도 자신이 연주해야 할 음을 알고 있습니다. 관악기 연주자들도 어느 순간 악기를 불어야 하는지 악보에 모두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케스트라 앞에는 항상 관객을 등지고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손에는 얇은 지휘봉을 든 체로 때로는 크게 팔을 휘두르고, 때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수십 명의 연주자를 바라봅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박자를 젓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휘자의 역할은 훨씬 복잡합니다. ---------------------------------------------------- 1. 지휘자는 단순히 박자를 젓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지휘자는 연주자들에게 박자를 알려주는 역할도 합니다.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는 모두가 정확한 순간에 시작해서 박자를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지휘자의 역할 중 너무나도 기본적인 부분일 뿐 입니다. 전문 연주자들 대부분은 지휘자가 없어도 박자를 맞춰 연주할 수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며, 가장 크게 지휘자의 역량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지휘자는 악기별로 서로 다른 악보를 보는 수십명의 연주자를 동화시켜 하나의 방향으로 연주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 2. 같은 곡인데도 음악은 전혀 다르게 들린다. 악보에는 많은 것이 적혀 있습니다. 빠르기, 셈여림, 음의 길이, 표현 방식 등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숫자처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악보에 ‘여리게’라고 적혀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까지 여리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는 연주자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점점 강하게’라는 표시 역시 얼마나 빠르게 강한 소리를 낼 것인지, 어느 순간 최고점에 도달할 것인지는 연주자 각자의 기준이 모두 다르며 해석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같은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더라도 지휘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한 지휘자는 빠르고 날카롭게 연주하고, 다른 지휘자는 느리고 묵직하게 연주합니다. 같은 악보를 같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는데도 음악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입니다. ---------------------------------------------------- 3. 오케스트라의 ‘전체 소리’를 듣는 사람. 오케스트라의 각 연주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연주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바이올린 파트에 앉아 있고, 호른 연주자는 금관악기 파트 속에 있습니다. 그 위치에서는 자신의 악기와 주변 악기의 소리가 크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너무 큰지, 첼로의 소리가 묻히고 있는지, 플루트가 충분히 들리는지, 금관악기가 전체 균형을 덮고 있는지 등을 판단합니다. 즉, 지휘자는 한 악기의 소리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 소리의 균형을 듣습니다. 이를 연주자들은 흔히 ‘밸런스’를 조절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좋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단순하게 모든 악기가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바이올린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클라리넷의 선율이 음악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휘자는 매 순간마다 그 곡의 음악이 가리키는 초점을 결정합니다. ---------------------------------------------------- 4. 지휘자는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음악을 만든다. 무대에서 관객이 보는 것은 실제 연주입니다. 하지만 지휘자의 중요한 작업 대부분은 연주 전과 리허설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장 먼저 지휘자는 악보를 연구합니다. 단순히 멜로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의 악보인 ‘총보(통칭 지휘 스코어)’를 분석합니다. 총보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부터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타악기까지 모든 악기의 악보가 한꺼번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휘자는 그러한 총보를 보고 연구하여 곡 전체의 구조를 그리고 음악을 설계합니다. 어디에서 음악의 긴장을 높일지, 어떤 부분을 부드럽게 연결할지, 어떤 악기를 더 강조할지를 미리 결정합니다. 그리고 연습 과정에서 그 생각을 오케스트라와 공유합니다. 공연 당일 지휘자의 손짓 하나하나는 이미 수많은 리허설과 해석의 결과인 셈입니다. (여담으로, 연주자들은 수 많은 지휘자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휘자마다 본인의 해석의 정도와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 그리고 오케스트라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카리스마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전문 연주자들은 리허설 시작 5분이면 지휘자의 역량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박자젓기 만을 하는 지휘자도 있고, 설명은 길지만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소리로 이끌지 못하는 지휘자도 있으며, 단순 리허설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 사이에 팽팽한 음악적 긴장감이 돌게 할 정도로 뛰어난 지휘자도 있습니다) ---------------------------------------------------- 5. 지휘자의 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지휘자는 보통 한 손에 지휘봉을 듭니다. 지휘봉을 든 손은 박자와 시작 시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쪽 손은 보다 자유로운 음악적 표현을 담당합니다. 조금 더 작게 연주하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소리를 크게 넓히라는 동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면 소리의 정도를 억제하는 느낌을 줄 수 있고, 팔을 크게 펼치면서 더 넓고 풍성한 소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휘는 손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빛, 표정 그리고 호흡 역시 중요한 신호입니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지휘자가 숨을 크게 들이쉬면 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같은 호흡을 느낍니다. 때로는 지휘자가 특정 연주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제 곧 당신이 등장할 차례입니다”라는 시그널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훌륭한 지휘자는 말 없이도 오케스트라 전원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 6. 지휘봉 없어도 지휘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모든 지휘자가 지휘봉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지휘자는 손만으로 지휘하기도 합니다. 어떤 지휘자는 이쑤시개를 사용하기도 핮니다. 또한 작은 규모의 챔버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적인 작품에서는 지휘봉 없이 손의 움직임과 표정만으로 음악을 이끌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휘봉 자체가 아니라 지휘자의 의도가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되는가입니다. 결국 지휘봉은 음악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지휘자의 생각을 연주자들에게 전달주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 7.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도 있을까? 물론 있습니다. 작은 규모부터 이야기하면, 규모가 작은 앙상블 등은 현대곡 연주가 아니고서는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현악 사중주처럼 네 명 정도가 연주하는 경우에도 연주자들끼리 서로 눈과 호흡을 맞추며 타이밍을 조절하고 음악을 만듭니다. 조금 더 큰 앙상블에서도 악장이나 퍼스트 바이올린 등 특정 연주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연주를 이끄는 경우가 있으며, 협연자(솔리스트)가 지휘자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질수록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한 곡 안에서 복잡한 템포 변화와 음악적 감정의 변화가 반복된다면 모든 연주자가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그 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공통된 기준이 됩니다. ---------------------------------------------------- 8. 좋은 지휘는 때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지휘자가 화려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로 하여금 지휘자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하고, 연주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순간에는 지휘자와 연주자의 구분마저 희미해집니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마치 하나의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동시에 호흡을 하고, 동시에 슬픔을 담기도 하며, 동시에 음악을 끌어올려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휘자가 있습니다. ---------------------------------------------------- 마치며, 클래식 연주를 보게 된다면 음악뿐 아니라 지휘자의 움직임도 한 번 자세히 관찰해보세요. 특정 악기가 등장하기 직전 지휘자가 어느 연주자를 바라보는지, 음악이 갑자기 조용해질 때 손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하는지, 곡의 분위기가 절정으로 도달하는 순간 몸 전체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단순히 팔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던 움직임들이 사실은 오케스트라와 나누는 아주 정교한 소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휘자는 직접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 개의 악기가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휘자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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