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십년 전 일기
문학 (에세이)(s******)09.16
십 년 전 일기를 꺼냈습니다.
누구를 좋아했었는지에 대한 내용보다도
그날 비가 왔다는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얼굴은 흐릿하지만
비 오는 날 다니던 버스 정류장은 아직 기억이 나거든요.
일기에는 비가 왔다, 신발이 젖었다, 버스가 늦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어렸던 저는 특별히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큰 사건만 골라 쓰면 내 삶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을 텐데,
종이 위에는 지각과 빨래와 반찬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부분만 작은 수첩에 옮깁니다.
남에게 보여줄 회고록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제 기억이 자꾸 중요한 일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지우는 것 같아서,
곧 흩어질 사소한 것들을 편들어 주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선선해서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모처럼의 가을 냄새가 좋네요.
